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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미국

뉴멕시코 여행기 (Day 7 캐년로드 + 뉴멕시코 미술박물관 )

by 여행자슬이 2020. 11. 3.

2018년 3월 16일 금요일

 

뉴멕시코에서의 7번째 아침이 밝았다.

다음날은 산타페에서 앨버커키로 이동하는 날로 잡아놨기 때문에 사실상 산타페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그 전날 다 둘러보지 못한 캐년로드가 눈에 아른거렸다.

뉴멕시코 미술 박물관만 잠깐 둘러보고 호텔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는데 일정을 바꾸어서 조금 아침 일찍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재미있는 작품들을 볼 생각에 룰루랄라 샤워를 준비하려는데 아침부터 급하게 전화가 온다.

모델 애가 급하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사실 그렇게 급한일도 아니었고 다른 에이전트에게 문의해도 될 일이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알려줬다.

그리고 샤워실에 발을 내딛는데 이번에는 그 인간에게 문자가 온다.

2주 후에 있을 일에 대한 옵션을 묻는다.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2주 후에 있을 일을 지금 굳이 휴가 가 있는 사람에게 묻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 인간은 항상 그랬어서 놀랍지 않았다. 

진짜 씻으려고 물을 트는데 전화가 온다.

그 인간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래서 옵션 언제 알 수 있어?"

"그거 내가 알아보고 답 오면 알려줄게."

"알았어."

 

정말 앞에 있었다면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샤워를 끝내고 캐년로드로 출발했다.

아침부터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어제 보다 말았던 갤러리부터 돌아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그 인간한테 또 전화가 온다.

그냥 무시해버리니까 이번에는 문자가 온다.

이 인간 내가 올린 인스타그램에 샘이 난 게 분명하다.

너무 화가나서 보스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하는데 정말 바보같이 눈물이 나왔다.

서러운 게 컸다. 

 

'내 휴가도 못 즐기게 하네'

 

사실 이 휴가를 썼던 것도 그 인간의 얼굴을 좀 덜 보기 위해서 인 것도 있었다.

항상 내가 무슨 일만 하려면 방해하고 질투하던 그 인간.

마음을 항상 못됐게 쓰던 그 인간은 올해 8월에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잘린 이유도 그 인간다웠다. 

 

 

그 인간 하나 때문에 재미있던 이 여행을 망칠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캐년로드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갤러리가 정말 너무 많고 또 재미있는 작품들도 많아서 또 어느새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때 결심했다. 내가 아주 많이 늙어서 은퇴할 나이가 되면 꼭 다시 산타페로 돌아오리라.

산타페는 일에 지쳐있던 나에게 힐링이자 위안이었다.

 

 

생각보다 캐년로드를 금방 둘러보고 뉴멕시코 미술 박물관으로 향했다.

중앙광장 바로 앞이라 점심은 푸드트럭에서 사 먹었다.

사실 아무 생각 없다가 너도나도 사 먹어서 먹은 거였는데, 다 사 먹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뉴멕시코 미술 박물관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정해진 시간마다 있는 무료 도슨트 투어를 함께 돌며 중요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그것도 재미있었고, 

뉴미디어와 결합한 작품들이 특별 전시관에 전시되어있었는데 그것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건물 자체가 너무 예뻐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산타페에서의 마지막 투어가 끝나고 숙소에 들어와 짐 정리를 대충 마친 후, 저녁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근처 몰에 태국 음식점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홀린 듯이 들어갔던 그 음식점은 분위기도 서비스도 맛도 최상이었다. 

뉴멕시코 가기 전에 삼시세끼 전부 멕시칸 음식으로 도배하려고 했던 내 계획은 이렇게 마지막 날에도 철저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렇게 산타페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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