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2일 월요일
전날 추운 날씨에 많이 걸어 몸살 날까 걱정된 나머지 저녁 먹고 호텔로 들어와 호텔 수영장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더니 확실히 컨디션이 좋다. 여행 다닐 때 항상 수영복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웬만한 호텔에는 수영장 시설이 다 되어있어서 여행 중 과식했을 때 몸을 움직여 칼로리 소비하기도 좋고, 또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따뜻한 스파에 들어가면 효과 만점이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산타페로 향할 준비를 해본다. 뉴멕시코까지 온 이유는 사실 앨버커키가 아니라 산타페에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에 예쁜 도시. 오키프가 사랑했던 도시. 그곳으로 향해본다.
우선, 그전에 호텔 근처에서 아침 요기부터 하기로 한다.
보통 여행 가서는 프랜차이즈 점을 잘 가지 않는데 호텔 근처에 있는 유일한 뉴멕시칸 음식점이 프랜차이즈라 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굉장히 잘한 선택이었다.
아침부터 아저씨들이 커피와 아침을 즐기는 분위기의 식당은 프랜차이즈 식당이라기보다는 동네 다이너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서버도 앨버커키에서 만난 사람들 중 단연 최고로 친절했다. 그리고 처음 맛본 그린 칠리 스튜는 참으로 맛있었다.
여담이지만, 까칠하기로 소문난 뉴요커들 못지않게 앨버커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참으로 불친절했다.
이제 정말 앨버커키를 떠나 산타페로 향해야 한다.
교통수단은 앨버커키와 산타페를 오가는 기차로 선택했다.
기차역 근처는 모든 기차역 근방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치안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홈리스들도 많이 보이고, 근처에 딱히 시간을 보낼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느긋하게 기차 시간 맞춰서 도착하기를 권장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뉴욕의 Penn Station이나 Grand Central을 생각한 나는 남은 2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양손이 짐으로 가득해서 근처 백화점에서 아이쇼핑을 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기차역 근처를 빙빙 돌다가, 눈에 보이는 피자집에 들어가서 음료를 잔뜩 시키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매니저들과 점원이 분주해진다. 알고 보니 홈리스가 변을 보고 화장실을 엉망으로 만든 뒤 도망을 간 거다.
뉴욕에서 흔히 보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다시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해본다. 그리고 속으로 식당에 오자마자 화장실을 쓴 나 자신을 칭찬해본다. 하마터면 산타페 도착까지 화장실을 참아야 할 뻔했다.
기차 시간이 다되어가자 기차역으로 다시 가본다. 플랫폼에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시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을 하지 않는다.
초초해진 사람들 사이로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고 간다.
대학생이라 방학을 맞이하여 산타페에 놀러 가는 여학생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 그리고 영감을 받기 위해 떠나는 뮤지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모델 에이전트요."
"재미있는 일을 하는구나."
그냥 웃고 만다. 과연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라는 게 있는 걸까?
재미있어 보였던 일도 정작 직업이 돼버리면 재미가 급속도로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노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기다리던 기차가 도착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그룹 그대로 무리 지어 기차에 탄다.
영감을 받기 위해 떠난다는 뮤지션이 이런저런 밴드들을 추천해준다.
미국에 오래 살았다면 오래 살았는데,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밴드들이다.
"흥미롭네요. 들어볼게요."
예의상 열심히 밴드 이름들을 적어놓는다.
사실 이 글을 적고 있는 2년 지난 지금까지도 그 밴드들 음악을 하나도 듣지 않았다.
창 밖으로 영화에서나 보이던 남부 미국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2시간 남짓의 이동이 끝나고, 산타페 역에 도착했다.
무리들과 헤어지고 셔틀을 위해 호텔에 연락을 취해본다.
곧 셔틀이 도착할 거라는 대답이 왔다.
하지만 셔틀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기차에서 내렸던 손님들 전부 역에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호텔 셔틀과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한참 기다리던 셔틀이 드디어 도착을 하고 호텔에 도착했더니 벌써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밖이 어둑어둑해져서 어디 가기도 뭐하고 저녁을 시켜먹기 위해 메뉴를 생각해본다.
이상하게 뉴욕에서 그렇게 널리고 널렸던 피자가 너무 그리워진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호텔까지 배달되는 피자집에 연락을 해 급히 시켜본다.
난 그때 처음 느꼈다. 내 소울 음식은 피자구나.
내 인생 손에 꼽히는 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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